2003년 12월 15일
위연 반골의 상
우연히 지식 거래소의 글들을 보다가 위연의 글들을 보게 됬다
많은 사람들이 위연을 반골의 상 으로 기억하고 좋지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거 같다.
나중에 천천히 다룰려 했는데 위연을 탐구해볼까 한다.
위연
자는 문장 의양군 사람이다.
유표의 밑에 있다가 유비에게 귀순했다.
위연은 촉한 장수중에서 관우 장비 황충 마초 에 버금가는 공을 세웠으며 조운보다도 더 중용되었다.
이들이 세상을 떠난후에는 제일가는 장수중에 한명이었다.
유비가 한중을 얻고 한중왕이 되었을때
모두들 한중을 다스릴 태수로 장비를 생각했고 장비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유비는 위연을 한중태수로 임명했다.
다들 의아해 하자 유비는 신하들 앞에서 위연에게
"그대는 지금 중임을 맡았는데 어떻게 담당할지 말해보라"
위연이 대답했다.
"만약 조조가 천하를 들어 쳐들어 온다면 대왕을 위해 그를 막기를 원합니다. 만약 조조가 그의 부장의 인솔하에 10만 병사를 이르게 한다면 대왕을 위해 그들을 소멸시키기를 원합니다"
유비는 매우 칭찬했고 사람들도 그의 장엄한 말에 모두 탐복했다고 한다.
유비가 죽은 후에는 항상 제갈량을 수행하여 출정하였다.
제갈량에게 정예 5천군사를 끌고 지름길로 나아가 자오곡으로 나가면 열흘안에 장안에 당도 할수 있다며 허락해주기를 바랬다 이게 유명한 자오곡 계책이다.
허나 제갈량은 위험한 계책이라고 허락하지 않았다.
제갈량이 죽은 후에 양의와 서로 역모라고 조정에 표를 올리고 대치하나 병사들은 위연을 버리고 흩어지고 위연도 한중으로 달아나지만 추격해온 마대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위연이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는 이유는
연의에서 위연이 장사태수 한현을 죽이고 황충과 함께 유비에게 항복했을때
제갈량이 위연을 보고 반골의 상으로 주인을 배반할 인물이니 참하라고 한다.
또 손권또한 위연의 반골의 상을 지적하는 대목이 있다.
그러다 보니 위연을 볼때마다 언제 배반을 하게 될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고
제갈량이 죽자 모반을 하는 부분에서는
자신의 무릎을 탁~ 치며 참으로 오묘하다고 생각들을 했을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허구다
위연이 언제 정확히 유비에게 귀순했는지는 사료부족으로 알수 없으나
장사태수 한현을 죽이지 않았고 황충보다 먼저 유비에게 귀순한 인물이다.
그리고 손권과는 일면식도 없다.
그러면 나관중은 왜 위연을 이렇게 묘사했을까?
나관중은 연의에서 유비를 한을 잇는 정통으로 인정하고 기술했다.
그런 유비의 신하 제갈량은 나관중에게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다.
연의에 제갈량을 보면 유비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넘는 묘사로 자신의 애정을 과시하고 있는것을 볼수 있다.
삼국지 촉서 위연전을 보면
제갈량이 죽자 위연이 비의에게 "승상은 비록 죽었지만 나는 건재 합니다. 승상부의 관리들은 시신을 운반해 귀국하여 장래를 치르고, 나는 병사를 지휘하여 적을 공격할 것입니다. 어찌 한사람이 죽었다고 하여 천하의 일을 내 팽개칠 수 있겠습니까?"
제갈량이 죽었는데 이런 위연의 태도가 심히 불만스러웠을게다.
그래서 작자의 자의적인 감정이 개입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거기다가 위연의 죽음 또한 일말의 의심을 살만 하기에 별루 거리낌을 못느꼈으리라
제갈량으로 하여금 훗날 위연의 반역을 예시 하게 하고
또 그가 죽기전 금낭의 계로 안배해서 위연을 죽이기 까지
제갈량의 신묘함을 돋보이게 해서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더욱 크게하는데 위연을 들러리로 쓴 셈이다.
위연 그는 과연 역모를 꾀하다가 죽었을까?
만약 그때 위연이 딴뜻을 품었었다면
군사들을 이끌고 위에 투항을 하거나 물자가 풍족한 한중에 주둔하여 힘을 기르며 촉을 위협하거나 촉중에서 군사적으로 자신을 상대할만한 인사가 없었으므로 곧바로 성도로 쳐들어와 후주 유선을 겁박하여 자신의 뜻을 얼마든지 펼수가 있었다.
위연정도의 장수라면 능히 생각할수 있는 계책들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은 곧 그가 역모의 뜻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삼국지 촉서 양의전에 보면
[제갈량은 양의의 재간을 매우 아꼈으며 위연의 용감함에 의지하고 있었으므로 항상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것을 한스러워하며 그들 중 한쪽으로 치우쳐 한쪽을 버리는 것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렇다 위연은 양의와 사이가 좋지못했다.
그런데 제갈량이 양의에게 전권을 넘겨주자 위연은 양의의 지휘를 받기가 싫었던 것이다.
양의 또한 제갈량이 없는 상황에서 위연은 두려운 존재였다.
역사는 승리자의 편이라고 했던가?
양의가 마대를 보내 위연과 그가족들을 몰살해버리니
위연의 진의는 당연히 양의가 흘리는데로 갈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양의는 후에 장완이 제갈량을 이어 승상에 오르고 자신의 관직은 나아진게 없자
비의에게
"과거 승상이 세상을 떠났을때, 내가 만일 군대를 들어 위나라로 갔다면, 지금의 내 처지가 이렇지 않았을 것을"
비의는 이를 유선에게 고하고 유선은 양의를 참수 하려고 하지만 장완의 만류로 귀향을 보낸다. 귀향 가서도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양의의 사람됨을 잘 나타내는 부분이다.
제갈량이 뛰어난 인물임에는 틀림 없지만 군사적인 일에 인재를 쓰는데는 몇번의 실패를 보이는것을 역사나 연의를 통해 볼수 있다.
마속의 경우가 가장 뼈아픈 것이요 양의와 위연의 일이 마지막 실패라고 볼수 있겠다.
위연은 용맹하고 자오곡의 계책을 내놓을 만큼 지략도 있었지만 성격이 오만하여 주변에 적이 많았다고 한다.
제갈량 사후에 남은 장령들의 단합에 누구보다도 힘을 쏟아야할 사람이 자신의 힘만 믿고 정적 제거에나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나 또한 그의 죽음을 결코 억울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의에 묘사된 반골의 상은 허구이다.
많은 사람들이 위연을 반골의 상 으로 기억하고 좋지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거 같다.
나중에 천천히 다룰려 했는데 위연을 탐구해볼까 한다.
위연
자는 문장 의양군 사람이다.
유표의 밑에 있다가 유비에게 귀순했다.
위연은 촉한 장수중에서 관우 장비 황충 마초 에 버금가는 공을 세웠으며 조운보다도 더 중용되었다.
이들이 세상을 떠난후에는 제일가는 장수중에 한명이었다.
유비가 한중을 얻고 한중왕이 되었을때
모두들 한중을 다스릴 태수로 장비를 생각했고 장비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유비는 위연을 한중태수로 임명했다.
다들 의아해 하자 유비는 신하들 앞에서 위연에게
"그대는 지금 중임을 맡았는데 어떻게 담당할지 말해보라"
위연이 대답했다.
"만약 조조가 천하를 들어 쳐들어 온다면 대왕을 위해 그를 막기를 원합니다. 만약 조조가 그의 부장의 인솔하에 10만 병사를 이르게 한다면 대왕을 위해 그들을 소멸시키기를 원합니다"
유비는 매우 칭찬했고 사람들도 그의 장엄한 말에 모두 탐복했다고 한다.
유비가 죽은 후에는 항상 제갈량을 수행하여 출정하였다.
제갈량에게 정예 5천군사를 끌고 지름길로 나아가 자오곡으로 나가면 열흘안에 장안에 당도 할수 있다며 허락해주기를 바랬다 이게 유명한 자오곡 계책이다.
허나 제갈량은 위험한 계책이라고 허락하지 않았다.
제갈량이 죽은 후에 양의와 서로 역모라고 조정에 표를 올리고 대치하나 병사들은 위연을 버리고 흩어지고 위연도 한중으로 달아나지만 추격해온 마대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위연이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는 이유는
연의에서 위연이 장사태수 한현을 죽이고 황충과 함께 유비에게 항복했을때
제갈량이 위연을 보고 반골의 상으로 주인을 배반할 인물이니 참하라고 한다.
또 손권또한 위연의 반골의 상을 지적하는 대목이 있다.
그러다 보니 위연을 볼때마다 언제 배반을 하게 될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고
제갈량이 죽자 모반을 하는 부분에서는
자신의 무릎을 탁~ 치며 참으로 오묘하다고 생각들을 했을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허구다
위연이 언제 정확히 유비에게 귀순했는지는 사료부족으로 알수 없으나
장사태수 한현을 죽이지 않았고 황충보다 먼저 유비에게 귀순한 인물이다.
그리고 손권과는 일면식도 없다.
그러면 나관중은 왜 위연을 이렇게 묘사했을까?
나관중은 연의에서 유비를 한을 잇는 정통으로 인정하고 기술했다.
그런 유비의 신하 제갈량은 나관중에게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다.
연의에 제갈량을 보면 유비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넘는 묘사로 자신의 애정을 과시하고 있는것을 볼수 있다.
삼국지 촉서 위연전을 보면
제갈량이 죽자 위연이 비의에게 "승상은 비록 죽었지만 나는 건재 합니다. 승상부의 관리들은 시신을 운반해 귀국하여 장래를 치르고, 나는 병사를 지휘하여 적을 공격할 것입니다. 어찌 한사람이 죽었다고 하여 천하의 일을 내 팽개칠 수 있겠습니까?"
제갈량이 죽었는데 이런 위연의 태도가 심히 불만스러웠을게다.
그래서 작자의 자의적인 감정이 개입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거기다가 위연의 죽음 또한 일말의 의심을 살만 하기에 별루 거리낌을 못느꼈으리라
제갈량으로 하여금 훗날 위연의 반역을 예시 하게 하고
또 그가 죽기전 금낭의 계로 안배해서 위연을 죽이기 까지
제갈량의 신묘함을 돋보이게 해서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더욱 크게하는데 위연을 들러리로 쓴 셈이다.
위연 그는 과연 역모를 꾀하다가 죽었을까?
만약 그때 위연이 딴뜻을 품었었다면
군사들을 이끌고 위에 투항을 하거나 물자가 풍족한 한중에 주둔하여 힘을 기르며 촉을 위협하거나 촉중에서 군사적으로 자신을 상대할만한 인사가 없었으므로 곧바로 성도로 쳐들어와 후주 유선을 겁박하여 자신의 뜻을 얼마든지 펼수가 있었다.
위연정도의 장수라면 능히 생각할수 있는 계책들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은 곧 그가 역모의 뜻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삼국지 촉서 양의전에 보면
[제갈량은 양의의 재간을 매우 아꼈으며 위연의 용감함에 의지하고 있었으므로 항상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것을 한스러워하며 그들 중 한쪽으로 치우쳐 한쪽을 버리는 것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렇다 위연은 양의와 사이가 좋지못했다.
그런데 제갈량이 양의에게 전권을 넘겨주자 위연은 양의의 지휘를 받기가 싫었던 것이다.
양의 또한 제갈량이 없는 상황에서 위연은 두려운 존재였다.
역사는 승리자의 편이라고 했던가?
양의가 마대를 보내 위연과 그가족들을 몰살해버리니
위연의 진의는 당연히 양의가 흘리는데로 갈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양의는 후에 장완이 제갈량을 이어 승상에 오르고 자신의 관직은 나아진게 없자
비의에게
"과거 승상이 세상을 떠났을때, 내가 만일 군대를 들어 위나라로 갔다면, 지금의 내 처지가 이렇지 않았을 것을"
비의는 이를 유선에게 고하고 유선은 양의를 참수 하려고 하지만 장완의 만류로 귀향을 보낸다. 귀향 가서도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양의의 사람됨을 잘 나타내는 부분이다.
제갈량이 뛰어난 인물임에는 틀림 없지만 군사적인 일에 인재를 쓰는데는 몇번의 실패를 보이는것을 역사나 연의를 통해 볼수 있다.
마속의 경우가 가장 뼈아픈 것이요 양의와 위연의 일이 마지막 실패라고 볼수 있겠다.
위연은 용맹하고 자오곡의 계책을 내놓을 만큼 지략도 있었지만 성격이 오만하여 주변에 적이 많았다고 한다.
제갈량 사후에 남은 장령들의 단합에 누구보다도 힘을 쏟아야할 사람이 자신의 힘만 믿고 정적 제거에나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나 또한 그의 죽음을 결코 억울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의에 묘사된 반골의 상은 허구이다.
# by | 2003/12/15 18:56 | 영웅들 대륙에 뜨고 지냐?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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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간에 작가의 의도는 어딘가에 항상 숨어있거나 들어나있겠죠.
그것에 대해 손해보는 이익보는 인물들도 있구요.
쥔장께서는 그래도 냉철하게 평가를 하시는 분 같습니다.
자주 구경올께요.^^
처음 읽으신다면 정비석씨 삼국지를 권하고 싶군요
위연의 반란은 다른 나라에 항복하지 않았다지만 자기의 욕심에 눈이 멀어 상관인 제갈량이 생전에 내린 철수 명령을 거부하고 거짓 상소를 올려 조정에 혼란을 줬으며 그것으로 부족해 촉군이 북벌을 위해 진출하거나 촉으로 돌아오기 위해 있는 길인 잔도를 태워버려 촉군 본대를 타지에서 전멸하게 만들 뻔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만들죠. 촉 조정의 대신들은 위연의 반란을 깨닫고 즉시 토벌군을 보냈으며 위연에 의해 길이 끊긴 촉군도 고생을 해가며 겨우 조정의 토벌군과 합류해 위연을 진압하러 나섭니다.
자기를 따르던 병사들에게 바로 버림받은 위연은 자식들과 함께 도망가다 마대에 의해 참수당하면서 최후를 맞죠.
다른 나라에 투항하거나 자기가 속한 나라의 지도자를 위협해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만이 반란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나라에 혼란을 주며 나라의 국력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도 반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위연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위연의 죽음이 승리자의 관점에서 쓰여진 억울한 죽음이라고 하는데 촉이 삼국지 역사에서 승리자가 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승리자의 관점에서 쓰여진 겁니까? 게다가 위연의 반란은 촉 내부에서 벌어졌던 일인데 거기에 승리자의 관점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위연은 절대 억울하게 죽은 것도 아니고, 무슨 정치적 음모나 권력 다툼에 의해 희생된 비운의 인물도 충신도 아닙니다. 그저 용맹은 쓸만했지만 안 좋은 인간성과 탐욕으로 인해 스스로를 자멸로 몰아넣은 인물 딱 그겁니다.